2011년 6월 12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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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


국내 전공교수들의 추천 번역본…고전읽기는 제대로 된 번역서로 시작해야

교수신문은 2005년 5월 30일(제358)호부터 올해 1월 9일자(385호)까지 우리시대 고전의
‘최고 번역본’을 추천하는 ‘고전번역비평’ 특집을 진행해왔다.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해
서울 명문대학들과 각종 일간지, 그리고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고전읽기’를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고전읽기가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을 키우
기 위한 목적에서 적극 권장되고 있다.

하지만 고전의 대부분은 번역서로 접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구도 번역서 선택에 관한 조
언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전공학자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고전번역에 뛰
어들고 있지만 이를 걸러내고 평가할만한 시스템이 우리 학계에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고전의 길로 들어섬에 있어서 “제대로 된 번역서의 선택은 그 고전을 제대로 읽
을 수 있게 되느냐 왜곡하게 되느냐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라고 학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은다. 따라서 교수신문은 권장되고 있는 고전들 개개별을 대상으로 전공자
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매주 고전번역을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추천하는 취재기사를 실어
왔다.

기본적으로는 10명 이상의 전공자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일
부 고전의 경우 전문가들의 의견이 전혀 취합되지 않는 관계로 다수추천을 진행하지 못
하였으므로, 원고를 집필한 전공학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추천번역을 밝혀두었다.

고전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재번역 되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들 전공자들의 의견을 바
탕으로 고전번역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제대로 된 고전의 길로 들어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획을 진행했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논어 2. 근사록 3. 삼국유사 4. 맹자 5. 장자 6. 시경 7. 금강삼매경론 8. 루쉰소설 9. 사
기열전 10. 삼국지연의 11. 이백·두보시선 12. 대학·중용 13. 주역 14. 수호전 15. 설국·마
음 16. 국가 17. 정치학·시학 18. 군주론 19. 통치론 20. 자유론 21. 자본론·공산당선언
2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비극의 탄생 23. 꿈의 해석, 이상 총 29종이다.

이들 고전에 대한 추천번역에 관한 전공자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추천번역
에 관한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거나 추천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제외했음).

△ 근사록 집해 I, II(여조겸·주희 엮음, 이광호 옮김, 아카넷 刊)
퇴계학을 전공한 이광호 연세대 교수의 『근사록 집해』는 모든 전공자들이 인정하는
국내 최고의 번역서다. 무엇보다 사상적으로 근사록을 이해하는 수준이 심도 있다. 원
문 번역의 정확성은 물론이고, 글의 맥락과 뜻을 밝히기 위해 상세한 주석을 달아놓은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원문이 같이 실려 있고, 책 뒷부분에 주요 용어 해설과 진영
첩의 영역본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를 편역해서 실었다는 점 역시 이광호 번
역의 미덕으로 꼽힌다. 10년의 세월을 묵혀 나온 결과물인 만큼 빛을 발한다.

△ 삼국유사 1~2(이재호 옮김, 솔 刊)
이재호 교수 번역은 한문번역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원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학술
적인 번역은 아니지만, 대학학부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삼국유사 전체를 이해하는 데 가
장 쉽고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다. 원문과 함께 각주가 달려 있다. 균여전이 부록에 포함
돼 향가공부에 도움이 된다. 1960년대 초판을 내면서,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번역의 오
류를 수정하고 문장을 현대적으로 다듬어 개정판을 냈다.

△ 장자(장자 지음, 안동림 역주, 현암사 刊)
안동림 前 청주대 교수의 『장자』는 그동안 전공자들에게 꾸준히 읽혀오며 두루 신뢰
를 받아온 번역이다. ‘최고의 장자 번역서’로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된 안 교수의 번역은
“평이하게 읽힌다”, “풍부한 주석의 참조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커다
란 장점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다. 동양고전 주석의 섭렵과 문장의 자연스러운 구사에
서 오랜 시간 공들여온 역자의 노고를 엿볼 수 있다.

△ 금강삼매경론(원효 지음, 은정희·송진현 옮김, 일지사 刊)
은정희 서울교대 교수는 원효연구에 일생을 바친 이로써, 그의 금강삼매경론 번역은 국
내 전문가들에게 “가장 탁월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一心’과 같이 어려운 불교용어
를 자세히 풀어 설명했고,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의 내용도 곁들여 놓고 있다. 기존 번역
본들을 꼼꼼히 검토해 비교·대조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더불어 경전이
인용된 부분에 대해 출전 근거를 밝혀둔 유일한 본이란 점에서 남다르다. 나아가 이기
영, 김달진, 한글대장경판 등 주요 구절마다 기존의 번역서들과 비교해서 보여줌으로써
불교사상에 관심있는 학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연구서가 될 것이다.

△ 루쉰 소설전집(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서울대출판부 刊)
김시준 前 서울대 교수의 번역은 전공자들의 루쉰소설 번역가운데 가장 선두에 서 있
다. 하지만 “아직도 이 번역을 능가하는 후학자들의 번역이 드물다”라고 평가될만큼 국
내 루쉰번역에서는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루쉰 문학에 대한 충실한 이
해를 바탕으로 ‘가장 표준적인 번역’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번역의 정확성 역시 큰
신뢰를 얻고 있다. 또한 유일하게 루쉰의 소설을 완역했다는 성과도 빼놓으면 안 될 것
이다.

△ 아Q정전(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창비 刊)
50종이 넘는 ‘아큐정전’의 번역 가운데 루쉰 문학 전문가들이 신뢰를 하는 번역서다. 역
자인 전형준 서울대 교수 역시 루쉰 전공자이기에 이 번역에는 루쉰문학에 대한 깊이 있
는 이해가 뒷받침 되어 있다. 나아가 문학평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탓에 기존
번역서들과는 달리 “깔끔하고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라는 평을 얻고 있다. ‘번역
불가능성’의 이야기가 떠돌 만큼 어려운 루쉰의 문학을 전형준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보
길 권한다.

△ 사기열전 상·하(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刊)
중국 고전번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장학자 김원중 건양대 교수의 『사기열전』은 완
역본으로서 전문가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번역서다. 현대적인 감각의 언어로 옮겨 이해
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사마천의 문학적인 표현과 원래의 어감을 잘 살렸다는 평이 주어
지고 있다.
각 열전의 첫 부분에는 역자의 해설을 싣고 중간 제목을 달아 놓아 일반인들도 사마천
의 문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배려했다. 또한 학술적인 번역 성과로도 “기존 번역서를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 史記(이성규 편역, 서울대출판부 刊)
이성규 서울대 교수의 『사기』는 완역서는 아니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가장 추천하고
싶은 번역”으로 꼽고 있다. “한문번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료비판과 해석을 충분히 거치
면서 구성을 새롭게 한 게 탁월하다”라는 것이 주된 견해인데, 역사학자의 실력이 제대
로 발휘된 것이다. 또한 역자의 해체와 재구성이 높은 점수를 사고 있다. 김경호 성균관
대 교수 등은 “이성규 역은 사회와 경제, 사상과 철학, 고대사회의 주술적·신화적인 세계
관과 그 의식에 대해 관련 열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라며 장점을 평가한다. 더불
어 해제의 탁월함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 삼국지연의(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솔 刊)
정역류로서 국내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것은 김구용 번역이다. 난무하는 삼국지 번역서
들 가운데 김구용 역은 “원문에 가장 충실하고 진지한 번역”으로 꼽힌다. 삼국지 마니아
들 중 김구용 역을 읽지 않은 이들은 없을 정도로 신뢰를 얻고 있다.
국내에는 유독 평역류의 삼국지가 유행하고 있는데, 역자의 관점이 지나치게 많이 가미
돼 삼국지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이들이라면 이 역본을 읽을 것을 권한다. 삼국지
는 또한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반드시 주석으로 설명해야 하는 부
분들이 있는데, 김구용 역은 적절한 주석을 싣고 있어 삼국지 이해를 한껏 돕는다.

△ 삼국지(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刊)
삼국지를 거듭 읽는 이들은 무엇보다 그것의 ‘읽는 맛’을 꼽는다. 황석영 역은 그런 점에
서 삼국지의 흥미를 배가시켜줄만한 번역본으로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다고 해서 번역의 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전문성
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이 특유의 필치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가히 ‘최고의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大學·中庸(김학주 역주, 서울대출판부 刊)
김학주 前 서울대 교수는 四書 뿐 아니라 도가사상, 중국문학 등 중국 고전에 관해서는
국내 최고의 권위가이다. 그러한 김 교수의 『대학·중용』번역은 여전히 전공자들에게
가장 큰 신뢰를 얻고 있다.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물론이고, 상세한 해설을 곁들여 한학
에 능하지 않은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문장도 다른 역서들보다 “매끄럽고
순조롭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또한 다른 역서들이 주희의 개본을 따르는 반면 이 번
역은 예기에 실려있는 古本대학을 취해 해설했다는 점이 차별적이다. 분장도 공영달의
것을 따랐으며 해설 역시 주자만이 아닌 다양한 견해들을 두루 보여준다.

△ 大學 / 中庸 (박완식 편저, 여강 刊)
고전번역 능력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봉의 박완식 전주대 교수. 그의 『대
학』과 『중용』번역은 다른 역서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띤다. 우선 번역에 그치지 않
고, 대학혹문·대학강어, 중용혹문·중용독서기 등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자의 주장을 가
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대학과 중용의 경문을 장지와 절지 그
리고 전지로 나누었으며, 원문에 강설을 덧붙였고, 장구주를 해석한 후 여설을 붙여 주
자의 해설을 보완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다.

△ 譯註 周易本義(주희 지음, 백은기 역해, 여강 刊)
주자의 주역본의를 ‘제대로’ 번역해놓았다. 국내 주역번역은 대부분 한문학자들이 자의
적인 해석을 곁들여 사상을 곡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 번역은 주자역학 전공자
백은기 전남대 교수가 옮겼다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주자어류, 주자대전, 주역본의 연
구를 중심으로 주역 상경, 하경, 계사상전, 하전, 설괘전, 서괘전, 잡궤전 등 7개 장으로
나누어 한문원문과 풀이, 해설로 엮었다. 또한 주역본의에 나온 구절들을 주자의 문집
과 어류에서 찾아 각주에 소개해 상호대조가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역자의 주도 주역 이
해를 한껏 돕는다.

△ 懸吐 完譯 周易傳義 上, 下(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刊)
성백효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교수를 거치지 않고 중국고전에 입문한 사람이 없을
만큼 그의 번역은 국내 동양사상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주역전의는 주역에 대한 정전
과 본의를 합본한 것으로, 조선조 유학자들이 가장 많이 독본으로 채택했던 것인데, 성
교수의 『주역전의』 번역은 그의 다른 역서들과 마찬가지로 주희의 사상을 가장 잘 드
러내어 번역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말미에는 시초를 펼쳐서 괘를 구하는 법을
해설해 놓았다. 한문에 식견이 있는 초학자들에게 권한다.

△ 수호지 1~7(연변대학수호전번역조역, 청년사 刊)

국내 번역본 가운데 수호지 번역은 추천할만한 것이 없다. 오히려 누구보다 중국어를
잘 아는 연변족이 번역해 원문 단어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서 학자들은 이 번역본을 권한다. 1백20회본에 나와 있는 詩詞를 있는 그대로 감칠맛 나
게 번역했고, 모든 자구를 가능한한 살려 수호전 연구자가 저본으로 삼기에도 족하다.
중국의 장회소설에는 詩詞가 많이 혼재해 있는데 수호전도 예외는 아니다. 소설 속에 시
사가 섞여 있음은 줄거리의 흐름을 방해하고 독자의 눈을 피곤하게 한다하여 자의적으
로 생략하여 출판하곤 하는데 청년사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체가 고풍스러우면서
도 멋스러운 것도 장점이다.

△ 마음(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웅진 刊)
나쓰메 소세키 문학전공자의 번역서로 일문학자들이 추천한다. 일본어만 안다고 일본
문학을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세키의 문학은 단순한 언어 번역을 뛰어넘어 문
화적인 번역까지도 충실히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마음』번역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소
세키의 문학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박유하 교수 번역에서부터 시
작해야 할 것이다.

△ 국가(플라톤 지음, 박종현 역주, 서광사 刊)
서양고대철학전공자 10명 전원이 ‘국내 최고의 번역서’로 추천했다. ‘원전에 충실한 번
역’으로 국내 학술번역의 수준을 한껏 높여 놓았다. 역자 박종현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
내의 플라톤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만큼 번역어의 정확성뿐만 아니라 역주도 신뢰가 간
다. 1997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2005년까지 거듭 개정판을 선보였다. 플라톤의 생애와
철학에 대한 개괄적인 서술, 풍부한 관련 사진 자료 등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2003년
에 S. R. Slings에 의해 편찬된 Politeia의 새로운 Oxford Text를 기본 대본으로 삼았다.

△ 정치학(나종일 옮김, 삼성 刊)
바커(E. Barker)의 영역을 대본으로 삼은 중역본이며, 25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가장
최근의 번역서다. 번역이 무난하다는 점에서 원전번역인 김완수·천병희 공역보다 낫다
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나종일 역은 의역이면서도 상당히 정확한 바커의 영문본을 비교
적 충실히 번역한데다 간혹 희랍어가 필요한 대목에는 희랍어를 넣거나 주석으로 처리
해 원전번역이 아닌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주석도 고전에 걸맞은 정도는 못되지만 어
느 정도 달려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옮김, 까치 刊)
역자인 강정인 서강대 교수는 정치철학전공자로서 로크 사상과 연구에 있어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그런 만큼 까치판 『통치론』은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두루 교재로 사용되
며 로크사상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서양철학과 정치사상전공자들이 현재까지 출간된 통치론 번역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정치철학연구와 번역을 맡아오면서 원문해독의 정
확성과 문장구사의 자연스러움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명예혁명시기 영국 근대사상의
포문을 열었던 로크의 사상을 이 번역서와 함께 만나보길 권한다.

△ 로마사 논고(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안선재 공역, 한길사 刊)
강정인·안선재 번역은 원전에 매우 근접해 있고, 가독성과 성실성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
일반인과 전문가가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 정치철학자와 서구의 서술방식에
대한 권위자의 공역답게 마키아벨리가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한 흔
적이 역력하고, 논쟁적인 부분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대명사를 그
것이 지칭하는 보통명사·고유명사로 바꾼다던지, 반복되는 단어를 문맥에 따라 적절한
단어로 교체하는 작업이 마키아벨리의 저서와 사상에 대한 논쟁을 충분히 소화하지 않
고선 불가능하기에 더욱 그렇다.

△ 통치론(존 로크 지음, 강정인 옮김, 까치 刊)
정치철학자의 번역으로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기반된 전문성”과 “매끄러운 문장구사”
로 정치사사상 전공자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역자는 이 외에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도 번역·출간함으로써 공히 마키아벨리 전문가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뒤편에 역자의 해제가 함께 실려 있어 이해를 도우며, 일반인 뿐 아니라 전문가가 보기
에도 “가장 좋은 번역본”이라는 것이 국내 정치철학자들의 의견이다.

△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형철 옮김, 서광사 刊)
해박한 전공지식으로 난해한 밀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번역서이다. 국
내의 자유론 전공자들에게도 오랫동안 가장 널리 읽힌 역서이다. 원문의 뜻을 정확히 옮
기려고 직역 위주의 번역어를 사용해 뜻을 훼손하지 않고 간결히 전달해준다. 프레드 버
거(Fred R. Berger)가 쓴‘Happiness, Justice, and Freedom: The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of John Stuart Mill’(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의 ‘자유에 관한
이론’을 싣고 있어 밀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刊)
정치학적 식견과 아름다운 우리말 솜씨를 동원해 ‘자유론’을 한번 더 읽고 싶은 고전으
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책세상 번역의 특징은 친근한 말로 쉽게 풀어써 전달하
고 있다는 점이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의 번역 역시 영어의 뉘앙스를 잘 살리면서도 과
감히 문장을 잘라 일상어로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더불어 연구를 통해 확신하게
된 자유사회주의자 밀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밀의 사상을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저자의 주와 역자 주가 자세히 달려 있어 종합적 이해를 돕는다는 점 역시 빼놓
을 수 없는 장점이다.

△ 자본론(칼 맑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 刊)
‘국내 최고의 맑스 전문가’의 번역이란 점에서 ‘최고의 번역’으로 꼽히고 있다. 맑스 전공
자나 맑스를 알고자 하는 비전공자들 가운데 김수행 번역을 거쳐 가지 않은 이들은 거
의 없다.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학자로서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이 번역은 맑스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개념의 정확한 번역과 충실한
주석, 쉬운 번역어 선택으로 맑스 사상으로 가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특히 한글화 작업
을 비롯해 꾸준한 개역작업을 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1(칼 맑스 지음, 김세균 감수, 박종철출판사 刊) ·공산주의
선언(김태호 옮김, 박종철출판사 刊)
‘공산당선언’ 번역은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결부되어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번역되
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번역출간 된 것은 총 13종. 이 가운데, 마르크시즘 전공자들
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박종철출판사 역을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서”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승호 경상대 연구원 등은 “박종철출판사 역이 노력을 번역에 심혈
을 기울였고, 치밀한 검토를 거쳤으며, 마르크스의 여러 초기저작들을 토론하는 가운데
서 이뤄졌다”라고 평가한다. 박종철출판사 역도 2종이 있는데, 단행본은 선집에 비해 역
주를 좀더 보충했고 한글로 매끄럽게 가다듬으며 오역부분을 검토했다는 점에서 차이
가 있다.

△ 비극의 탄생(니체 지음, 김대경 옮김, 청하 刊)
독문학자의 번역이지만 “원전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힌다”라는 평가를 받
고 있다. 즉 철학적인 내용해석에서도 전공자 못지않게 크게 뒤떨어지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 완간된 니체전집편의 이진우 교수 번역보다 "더 나은 번역“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번역본도 물론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전집번역보다 20
여년 앞서 번역되었음에도 보다 충실해 그 의미가 아직 퇴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니체전집 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니체 지음, 정동호 옮김, 책세상 刊)
정동호 교수는 니체로 학위를 받은 전문가로서 니체 연구와 번역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
고 있다. 역자가 오랜 시간 공들여 번역해온 결과물인 만큼 그 충실성에서 남다르다는
학계의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기존 번역본들보다 오역이 훨씬 줄었다는 점에서 신뢰할
만한데, 단적인 예로 모든 역서가 ‘초인’이라고 번역했던 개념을 ‘위버멘쉬’로 음역하여
니체사상의 오독을 바로 잡았다. 또한 역자가 자의적인 주석을 달고 있지 않아 니체 사
상을 왜곡하는 다른 역서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 꿈의 해석(프로이트 지음, 조대경 옮김, 서울대출판부 刊)
허다한 오역이 발견되는 여타 역본들에 비해 “오역이 비교적 적다”는 평가가 주어지고
있다. 독일어 직역투이지만 번역의 정확성에서 어떤 국역본보다 높은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 또한 역자가 이론적인 면을 잘 소화해 번역함으로써 프로이트를 제대로 이해하려
면 이 번역본으로 만날 것을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 꿈의 해석-프로이트 전집 4(프로이트 지음,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刊)
“무난하게 읽히는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의 역서이며 전집번역에 포
함되어 있어 학부생들에게 교재로 많이 채택되고 있다. 실제로 번역상의 오류도 이전 번
역서보다 훨씬 많이 줄어드는 등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kant, qualitaet der urteile

§ 22. Qualität der Urteile: Bejahende, Verneinende, Unendliche (Logikvorlesung)


Der Qualität nach sind die Urteile entweder bejahende oder verneinende oder unendliche. — Im bejahenden Urteile wird das Subjekt unter der Sphäre eines Prädikats gedacht, im verneinenden wird es außer der Sphäre des letztern gesetzt und im unendlichen wird es in die Sphäre eines Begriffs, die außerhalb der Sphäre eines andern liegt, gesetzt.

Anmerk. 1. Das unendliche Urteil zeigt nicht bloß an, daß ein Subjekt unter der Sphäre eines Prädikats nicht enthalten sei [verneinendes Urteile], sondern daß es außer der Sphäre desselben in der unendlichen Sphäre irgendwo liege; folglich stellt dieses Urteil die Sphäre des Prädikats als beschränkt vor.

Alles Mögliche ist entweder A oder non A. Sage ich also: etwas ist non A, z. B. die menschliche Seele ist nicht-sterblich — einige Menschen sind Nichtgelehrte u. dgl. m. — so ist dies ein unendliches Urteil. Denn es wird durch dasselbe über die endliche Sphäre A hinaus nicht bestimmt, unter welchen Begriff das Objekt gehöre; sondern lediglich, daß es in die Sphäre außer A gehöre, welches eigentlich gar keine Sphäre ist, sondern nur die Angrenzung einer Sphäre an das Unendliche oder die Begrenzung selbst. — Obgleich nun die Ausschließung eine Negation ist: so ist doch die Beschränkung eines Begriffs eine positive Handlung. Daher sind Grenzen positive Begriffe beschränkter Gegenstände.

2. Nach dem Principium der Ausschließung jedes Dritten (exclusi tertii) ist die Sphäre eines Begriffs relativ auf eine andre entweder ausschließend oder einschließend. — Da nun die Logik bloß mit der Form des Urteils, nicht mit den Begriffen ihrem Inhalte nach, es zu tun hat: so ist die Unterscheidung der unendlichen von den negativen Urteilen nicht zu dieser Wissenschaft gehörig.

3. In verneinenden Urteilen affiziert die Negation immer die Kopula; in unendlichen wird nicht die Kopula, sondern das Prädikat durch die Negation affiziert, welches sich im Lateinischen am besten ausdrücken läßt.

** Peter McLaughlin, s.62

unendlich = unbestimmt


(aus KrV A72/B97)

2. Ebenso müssen in einer transzendentalen Logik unendliche Urteile von bejahenden noch unterschieden werden, wenn sie gleich in der allgemeinen Logik jenen mit Recht beigezählt sind und kein besonderes Glied der Einteilung ausmachen. Diese nämlich abstrahiert von allem Inhalt des Prädikats (ob es gleich verneinend ist) und sieht nur darauf, ob dasselbe dem Subjekt beigelegt, oder ihm entgegengesetzt werde. Jene aber betrachtet das Urteil auch nach dem Werte oder Inhalt dieser logischen Bejahung vermittelst eines bloß verneinenden Prädikats, und was diese in Ansehung des gesamten Erkenntnisses für einen Gewinn verschafft. Hätte ich von der Seele gesagt, sie ist nicht sterblich, so hätte ich durch ein verneinendes Urteil wenigstens einen Irrtum abgehalten. Nun habe ich durch den Satz: die Seele ist nichtsterblich, zwar der logischen Form nach wirklich bejaht, indem ich die Seele in den unbeschränkten Umfang der nichtsterbenden Wesen setze. Weil nun von dem ganzen Umfange möglicher Wesen das Sterbliche einen Teil enthält, das Nichtsterbende aber den anderen, so ist durch meinen Satz nichts anderes gesagt, als daß die Seele eines von der unendlichen Menge Dinge sei, die übrigbleiben, wenn ich das Sterbliche insgesamt wegnehme. Dadurch aber wird nur die unendliche Sphäre alles Möglichen insoweit beschränkt, daß das Sterbliche davon abgetrennt, und in dem übrigen Umfang ihres Raums die Seele gesetzt wird. Dieser Raum bleibt aber bei dieser Ausnahme noch immer unendlich, und können noch mehrere Teile desselben weggenommen werden, ohne daß darum der Begriff von der Seele im mindesten wächst, und bejahend bestimmt wird. Diese unendlichen Urteile also in Ansehung des logischen Umfanges sind wirklich bloß beschränkend in Ansehung des Inhalts der Erkenntnis überhaupt, und insofern müssen sie in der transzendentalen Tafel aller Momente des Denkens in den Urteilen nicht übergangen werden, weil die hierbei ausgeübte Funktion des Verstandes vielleicht in dem Felde seiner reinen Erkenntnis a priori wichtig sein kann.

2011년 6월 4일 토요일

미학과 신학

예기치 않은 신의 선물을 받는 기분이에요. 갑자기 현장에서 찍을 때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특별한 효과를 준다거나. 갑자기 배우의 머리카락을 바람이 그 장면에 필요한 감정에 맞게 적절하게 흩날려 준다거나 하는 식이요.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불가능한 실사 영화에서만 가능한 놀라운 순간들이 있어요. 예술적인 횡재에요. 제가 간절히 바란다고 언제나 다가오는 건 아닌 횡재. ...... 종교는 없지만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통제하지 않았고 통 제 할수 없는 상태에서 예기치 못하게 놀라운 무언가가 나오는 때가.

봉준호 인터뷰 가운데 발췌.

2011년 4월 19일 화요일

장님의 색상경험

"색에 관한 우리 어휘가 가지는 또 다른 흥미로운 특징은, 의미에서 경험적 측면보다 구조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선천성 장님의 예에서 확증된다는 점이다. 비록 색을 인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님은 실수 없이 색에 관한 낱말들의 용법을 배울 수 있다. 그의 말과 글을 보면 그가 그 낱말의 의미를 모른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따라서 그는 그 낱말의 의미를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뉴턴 가버,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학에 의하면 낱말의 의미는 그 낱말이 속하는 구조적 계열상의 가치값에 의해서 매겨진다. 색은 대상의 기초적 속성에 속한다. 색은 크기, 모양, 재질 등 물질적 대상의 다양한 기초속성들의 계열 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 가버의 진술은 장님은 비록 색상을 시각적으로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색상이 가지는 구조상의 가치값을 정확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를 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세부적으로 각각의 색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을까? 빨강, 파랑, 녹색, 노랑 등등 색상들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도 스펙트럼 상의 변별적 차이가 특정 색상의 의미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빨간 색의 빨감이라는 의미가 변별적 차이"만"으로 확정될 수 있을까?

(여기서 굳이 "메리"라든가 "감각질"문제까지 넘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상학에서는 생생한 체험 속에서 주어지는 대상적 자기동일성이 의미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구조주의 언어학의 의의를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이데거의 경우는 어떨까?

태어났다는 사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미 태어났다. 이미. 너무나도 확고한 거부할 수 없는 사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은 나의 존재 전체를 철두철미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피투성"의 좌지우지불가능성이야말로 인간 유한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지 않는가.

2011년 2월 4일 금요일

내가 뽑는 최고의 영화

헤드윅, 시티 오브 갓, 신시티, 시리아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본 슈프리머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계태엽오렌지, 어바웃 슈미트, 올모스트 페이머스, 도그빌, 게겐디반트

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범주 오류

역시 위키.


A category mistake, or category error, is a semantic or ontological error by which a property is ascribed to a thing that could not possibly have that property. All (propositional) mistakes involve some sort of misascription of properties, so in a sense any mistake is a "category mistake": putting a thing into a class to which it does not belong. But a "category mistake" in colloquial philosophical usage seems to be the most severe form of misascription, involving the endorsement of what is in fact logically impossible. Thus the mistaken claim that "Most Americans are atheists" is not a category mistake, since it is merely contingently true that most Americans are theists. On the other hand, "Most bananas are atheists" is a category mistake. To show that a category mistake has been committed one must typically show that once the phenomenon in question is properly understood, it becomes clear that the claim being made about it could not possibly be true.


The term "category-mistake" was introduced by Gilbert Ryle in his book The Concept of Mind (1949) to remove what he argued to be a confusion over the nature of mind born from Cartesian metaphysics. Ryle alleged that it was a mistake to treat the mind as an object made of an immaterial substance because predications of substance are not meaningful for a collection of dispositions and capacities.

Specifically, the phrase is introduced in chapter 1, section 2. The first example he gives is of a visitor to Oxford. The visitor, upon viewing the colleges and library, reportedly inquired “But where is the University?"[1] The visitor's mistake is presuming that a University is part of the category "units of physical infrastructure" or some such thing, rather than the category "institutions", say, which are far more abstract and complex conglomerations of buildings, people, procedures, and so on.

Ryle's second example is of a child witnessing the march-past of a division. After having had battalions, batteries, squadrons, etc. pointed out, the child asks when is the division going to appear. 'The march-past was not a parade of battalions, batteries, squadrons and a division; it was a parade of the battalions, batteries and squadrons of a division.' (Ryle's italics)

His third example is of a foreigner being shown a cricket match. After being pointed out batsmen, bowlers and fielders, the foreigner asks: 'who is left to contribute the famous element of team-spirit?'

He goes on to argue that the Cartesian dualism of mind and body rests on a category-mistake.



Laut Ryle liegt auch ein Kategorienfehler in der Annahme, dass die Begriffe Geist und Körper derselben Kategorie angehören. Dabei stünden die beiden Begriffe in demselben Verhältnis zueinander wie die Begriffe Spieler und Mannschaft. Aufgrund dieses Kategorienfehlers versuchen wir gewöhnlich auch, Geist und Körper gleichartig zu verstehen, was zu der Konsequenz verleitet, nach einem Geist zu suchen: das wäre so, wie neben den Spielern auch noch nach ihrer Mannschaft Ausschau zu halten.